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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산다는 것

"그럼 이탈리아로 요리를 배우러 가요?" "아뇨, 미식을 배우러 갑니다"

이탈리아에 있다보면 자주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긴다.

 

생소하죠. 물론입니다. '미식'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경험'을 생각할 것입니다. 오마카세에서 먹은 비싸지만 훌륭했던 한 접시의 예술, 제철을 맞아 먹었던 맛난 식재료 등, 맛있게 먹었던 무언가가 여러분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허나 제가 이 학교에서 쇠고기 안심스테이크에 푸아그라와 얇게 저민 트러플을 한 움큼 올려주는 요리 따위를 배울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는 걸까요? 아니, 그전에 '미식'이란 무엇일까요?

 

"미식(美食)은 좋은 음식을 뜻하는 말이며, 좋은 음식을 맛보고 연구하는 것은 미식학, 좋은 음식을 맛보고 즐기는 사람은 미식가라고 한다."

 

좋은 음식,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음식일까요?

 

맛있는 음식?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음식?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음식? 공정무역 식재료로 만든 음식?  영양학적으로 균형이 잡힌 음식? 적지만 양질의 식재료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음식? 요리과정과 재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맛과 질감을 개발한 음식? 가성비 좋은 음식? 인간의 온정이 담겨 있는 음식?.........

(여기서 잠깐, 한국에서는 영미권과 달리 '음식(Food, 대상)'과 '요리(Dish, Cook, 대상 또는 행위)'를 혼용해서 쓰는 경향이 있고 그걸 이용하여 제가 말장난을 치는 것 같습니다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음식(Food)'이라는 거대한 영역 안에 '요리(Dish)'가 있다는 견해로 적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네, 어떤 답을 내리시든 그것은 모두 정답입니다. 저는 생각나는 대로 대충 답을 적었지만 제가 대학교에서 배우는 과정들은 모두 저 답에 적거나 많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좋은 음식'에 대해서 깊게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는데요.

그럼 이해를 돕고자 여러분께 제가 전공하고 있는  'Master of World Food Studies(MWFS)'의 교육과정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낯설죠. 그 느낌이 맞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색합니다.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요리사인 제가 처음 느낀 것은 요리에 대한 '이론'이 이토록 많을 줄 상상도 못 했다는 것입니다.(심지어 이건 제가 속한 과가 이 과정을 배우는 것이고 당연히 다른 전공도 존재합니다. 물론 음식을 기초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발행한 시점에서 배운 것을 대충 적어보면, '음식의 역사', '음식인류학', '음식과 지속가능성', '농업생태학과 지속가능한 농업', '북아메리카 푸드웨이'(특정 문화, 지역, 또는 집단의 음식 문화, 식습관, 요리 방식, 그리고 음식과 관련된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관습 및 행위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 치즈 테크놀로지와 테이스팅, 올리브 오일의 역사, 무역, 환경, 기술, 테이스팅 등...

 

제 생각에 좋은 음식의 과거와 현재와 그것을 넘는 시간까지 고려했을 때, 무수히 많은 인류의 판단, 정의, 관찰, 행위, 교류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이렇게 무수히 많은 '좋은 음식'의 갈래를 퍼뜨린 것은 아닐까, 다소 현학적인 이야기를 했네요.

 

어떤가요? 

'요리(Cook)'는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쿠킹 세션이라는 게 있긴 하나,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요리가 아니며, 음식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입학한 학우도 더러 있고, 강사들로부터 당연히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PPT를 미친듯이 하게 될 것입니다 내향인 여러분 각오하십쇼

 

미식과학대학교의 전공들

 

 

그 밖에 제 전공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이 전공은 '1년 과정'입니다. 이는 이탈리아 교육 체계상 '1단계 전문 석사 과정'(Master Universitario di Primo Livello)이라고 하고, 학우들의 대다수가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그 이상의 학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저 역시 입학이 가능했습니다(자기소개서, 이력서, 서면 질의응답 등을 봅니다)

 

1년 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제 사비로 학비를 모은 만큼 대학교에 많은 금액을 소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이탈리아 대학교 3년(학사과정)이 정말 '루즈'하게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기에 1년 안에 저 모든  커리큘럼을 진행해야 하므로 '타이트'하게 진행됩니다. (그래도 1년에 시험 10번은 좀...)

학교에서 입학날 지급한 책들

 

이탈리아 대학교이지만, 외국인들을 위한 사립대학교인 만큼  영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전공마다 수업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제 전공은 영어로 수업합니다.) 또한 사립대학교인 만큼 학비가 좀 높은 편이지만, 장학금 제도도 잘 편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학생분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대학교에 입학한 지 2개월 정도 되어 이제야 좀 적응을 하는 상황인 만큼 아직은 배울 것도, 부딪쳐야 할 것도 많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이 학교에 온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각 과목들에게 분배된 시간이 길진 않지만, 한 과목을 접할 때마다 자신의 사고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고, 더 많은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궁금한 사항은 편안하게 질문 주시면 됩니다.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대학교의 사이트를 남겨놓으니, 도움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unisg.it/en/welcome-unisg/

 

Welcome to the 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

The Slow Food university based in Pollenzo, Piedmont - Italy!

www.unisg.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