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안 고속도로가 아직 개통되지 않았던 때일 테다.
기억 속을 헤집어본다.
분명 그 자동차였을 것이다. 기아 프라이드, 일면식 없는 그의 친구들은 차디찬 동장군을 맞이하며 굼벵이 같은 걸음으로 뜨겁고 답답한 연기를 내뿜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지도를 보는 어머니의 모습, 잠이 들어버린 두 아들내미, 그리고 외롭게 지루하게 그리고 걱정스럽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까지, 우리의 모습은 예고 없이 찍힌 연속 사진처럼 미동을 보기 힘들었다.
"설 귀성길 차량 행렬이 절정에 달한 오늘, 폭설까지 겹치며 곳곳이 심한 정체를 보입니다. 빙판길 운전에 유의하셔야…."
앵무새처럼 똑같은 소리를 하는 57분 교통정보는 도대체 몇 번째 듣는 것이며 더 들어야 하는 건지.
그저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그에 상반될 만큼 눈과 자동차 속에 갇혀 느리게 가고 있는 우리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목소리.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 휴게소라도 좀 들러서 갑시다".
어머니의 제안에 아버지와 한참을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오갔다. 잠시 후, 온실 속에서 꿈꾸던 나와 형은 차가 멈춘 것을 느꼈다.
"일어나." 어머니의 목소리.
아니, 벌써 아버지의 친가 댁인 홍성에 도착했단 말인가? 천만에. 잠이 덜 깬 나의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가냘픈 빛을 쬐고 있는, 넙데데한 갈색 바탕의 건물과 겨울 바다처럼 어둡고 푸른 간판, 그곳에 적혀있던 커다란 글씨. `신창휴게소`였다.
정말이지, 나가기 싫었다. "싫다고". 몸이 먼저 말했다. 자고 일어난 통에 겨울바람 한편만 대어도 살갗이 할퀴어지는데, 일어나서 나오라고요? 소변이 마려우면 차라리 참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에 참으로 젊고 강건하셨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끝내 우리 형제를 밖으로 불러내었다(끌어내었다).
깊고 차가운 밤의 휴게소에는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핫도그도, 알감자도, 분식 야외 가판대도, 지금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뽕짝` 성인 트로트 음악을 틀던 노인도, 모두 폭설이 두려웠는지 불을 끄고 철수한 듯 보였고, 불이 켜진 곳은 오직 실내 식당과 화장실뿐이었다.. 비몽사몽, 인사불성인 나를 어머니가 잡아끌며 말했다.
"가락국수 먹어볼래? 여기 유명해."
그때는 지금도, 어머니의 그 말투에는 내게 거부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국수인지 뭔지, 그저 따뜻한 곳에 들어가길 원했고 그렇게 붙들려 실내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대충 흘겨보던 찰나에, 보이는 문구. `신창휴게소의 명물, 가락국수'. 별생각도 없이 앉아 있던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쟁반을 자리로 가져오셨다.
가락국수, 김치, 단무지.
돌이켜봐도 예스러운 그릇, 아버지는 고춧가루 한 움큼 넣어서 비비기 시작했고, 나는 별 생각도 없이 그 국수를 맛보기로 했다. 그 어린 나이에는 정말 싫어했던 쑥갓을 간신히 옆으로 제치고(대놓고 밖으로 빼면 혼났기 때문이다!) 국수가 몇 가닥. 내 입에 들어갔다. 그리고 씹혔다. 선율처럼, 음악처럼, 가락처럼.
입안에서 느껴지는 식감은 나에게 정말로 신기했다.
유부와 젖은 김 가루는 중음 영역의 성부처럼, 국수와 잘게 잘린 대파는 경쾌한 고음처럼, 국물은 저음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상냥하고 따스한 감칠맛으로 나의 혀와 몸을 감싸 안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나는 어린아이답게 달궈진 입김을 한껏 하늘 위로 올려 보냈다.. 매섭게 내리는 눈이 약이 오르도록, 그렇게 아로새겨졌다. 꺼져가는 영혼의 불꽃같은,, 나의 추억 속에 국수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집에서 다음 주소를 찍었다.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온천대로 725' 그리고 1호선을 타고 신창역에서 내려 그곳에 갔다. 그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고, 난 그를 만나러 갔다. 알고 보니 77년생이라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 그였다만 그는 한결같았고 나는 어느덧 나이를 먹어버렸다. 이제는 추위에 떨며 오지 그는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누군가처럼, 여전히 유쾌하며 안락하고 따뜻하게 맞이해 줬던 그를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본다.
어느덧 내가 머무는, 지중해로 둘러싸인 이 국수의 나라에도, 저 멀리 설산이 보이는 싸늘한 아침이면 김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아른거린다. 내 나라의 모습이.
솜이불같이 따뜻한 카푸치노의 온기로 손을 흔들어본다.
저 멀리, 푸른 해원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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